방명록

  1. 무명의 크리스천의 충성 2017.09.06 17:25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목) 박형주 수학교수님과 강병균 수학교수님(포스텍,포항공대)이 60도의 3등분 작도가 가능하다는 아래글을 검증해주기를 바랍니다!!! 최익곤,김휘암,김갑용은 60도를 3등분하지 못했지만 나는 60도를 3등분했습니다.(수학계의 노벨상인 아벨상에 도전해도 되는가?) 만일 옳다고 생각하면 공감을 눌러 주세요.

    우선, 국제수학자회의(ICM)가 2014년 우리나라의 서울에서 개최된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수학이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축하합니다. 60도의 3등분 작도가 가능함이 대한 수학회등등에 보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최익곤과 김성석(필명 김휘암의 책이 3권 있음)
    책<2425년만에 밝혀진 수학의 신비-각의 3등분의 정리>, 도서출판: 참사랑(2004년 2월 출판)
    1995년 5월에 쓴 책<특수각과 원호의 3등분에 관한 연구>, 도서출판: 삼양문화사(비매품: 개인 논문집)
    2001년 4월에 발간한 책<2425년간의 침묵과 고독>
    부제: 나의 수학 연구편력- 특수각의 3등분에 관한 연구와 그 주변 이야기
    도서출판: 참사랑
    김갑용은 60도의 3등분을 하지 못했지만 저는 60도를 3등분했습니다. 저의 글에 대한 댓글에 어느 분이 독일제 각도기와 미국제 각도기로 60도의 3등분을 확인했습니다.

    완첼의 부등식으로 60도의 3등분이 되지 않음이 옳지 않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60도의 3등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틀렸다는 밝혀진거죠. 프랑스의 완첼(Wantzel)이 23세에 만든 완첼의 부등식은 x^3 - 3x - 1=0 대수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기학학적으로는 60도의 3등분이 가능한 것이죠.

    90도의 3등분 작도이후에 원을 지운 다음에 3등분에서 2개의 선분만 남긴 후(데카르트의 좌표가 됨)에 원점에 하나의 원을 그리고 원과 만나는 선분의 접점에 원을 그려나가면 60도가 3등분이 됐습니다.

    90도의 3등분 작도할 때도 데카르트 좌표의 원점에 컴퍼스로 원을 그린 후에 원과 만나는 접점에 원을 그리세요. 그러면 90도의 3등분이 됩니다. 90도의 3등분 다음에 60도의 3등분이 가능합니다. 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하면 됩니다. 그리고 지우개를 쓰세요.

    연필심이 없는 컴퍼스로 90도의 3등분과 60도의 3등분이 됐는지 확인하시면 인정할 것입니다.
    60도의 3등분 작도가 되므로 30도,15도,7.5도,3.75도......의 3등분 작도가 됩니다. 시계를 보니 5:09 pm(오후) 2006년 7월 22일(토요일)
    60도의 3등분이 됨을 증명끝(Q.E.D.)

    여기서 60도의 3등분 작도의 키포인트(요점)는 90도의 3등분 작도(90도의 3등분은 이미 증명되었음)후에 60도를 3등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60도의 3등분 작도를 하기전에 90도의 3등분 작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거죠. 이때 저는 데카르트 좌표계를 사용했습니다. 정말 데카르트는 뛰어난 수학자였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아래는 댓글인데 수엉님이 각도기로 60도의 3등분을 확인했음)
    수엉: 제가 님이 말한 방법대로 작도하고 제 각도기로 측정해 봤더니 3등분이 약간 안 되던데요? 참고로 저는 각도기중에서 가장 좋다는 독일제 FSS-3559 각도기를 쓰고 있습니다만. 2006/07/23

    뉴턴 2세(기독교인): 수엉님/ 데카르트의 좌표 원점에 하나의 원을 그린 후에 y축의 접점과 x축의 접점에 동일한 크기의 원 하나를 각각 그리세요.

    그리고 선분을 그리면 90도의 3등분이 가능합니다. 그 상태에서 x축과 60도에 해당하는 선분만 남기고 지우개로 지운후에 2개의 선분이 만나는 원점에 원 하나를 그리세요. 원과 만나는 2개의 접점에 동일한 크기의 원을 각각 그리세요. 또 접점에 원을 그려나가면 60도의 3등분이 가능하게 됩니다. 다시 한번 확인해보세요. 2006/07/23

    뉴턴 2세(기독교인): 수엉님이 90도와 60도의 3등분이 된 것을 확인하고 대한수학회에 보고를 해주세요. 논문투고 말고 보고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보고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입니다. 수학사에 남으니까요.

    여기서 60도 3등분 작도의 키포인트는 90도의 3등분 작도후에 60도를 3등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60도의 3등분 작도를 하기전에 90도의 3등분 작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거죠. 대한 수학회에 보고서의 양식이 있을 것입니다. 외국의 물리학회와 수학회에 보고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니까요. 2006/07/23

    ㅇㅁㄴㄹ: 뻘짓했다고 수학사에 남겠군요.. 2006/07/23

    수엉: 님이 말한 그대로 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19.9999998 도, 19.9939934 도, 그리고 20.0060058 도, 이렇게 나오네요.
    아, 독일제 각도기.

    뉴턴 2세(기독교인): 수엉님이 독일제 각도기 FSS-3559 로 잰 20도에 해당하는 3개의 각도 합(60도)은 59.999999 도 입니다.
    2006/07/24

    수엉: 제가 사촌동생한테 빌려서 미제 각도기로도 해 보았는데요(록히드 마틴사 M-3443 각도기) 이걸로도 독일 각도기랑 같은 각이 나오네요. 님이 실수하신 것 같아염. 2006/07/25

    수엉: 왜 좋다는 외제 각도기들이 다 이 모양이져? 2006/07/25

    이글은 2008년 7월초에 쓰는 글인데 수엉님이 말한 정확도가 높은 각도기도 오차가 아주 조금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나온 59.999999 도에서 0.0000001 도를 더하면 정확하게 20 도가 3개=60 도가 됩니다.

    다시 말해서 독일제와 미국제의 각도기의 매뉴얼(사용설명서)에서 오차율이 있다면 0.0000001 도에 해당하는 +/-(플러스 마이너스) 오차가 있을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따라서 역으로 60 도를 3등분함으로써 생기는 오차율을 통해서 각도기의 성능을 시험할 수 있는 토대를 제가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과 미국표준과학연구원(NIST) 그리고 프랑스에 있는 국제 표준규격 (m미터) 원기의 오차를 조정하는데 유용함을 초월해서 국제 기준(표준)을 만들 수 있게 응용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인터넷뉴스(2008년)를 봤는데 완전한 구체에 가까운 구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인류의 현재 기술로는 완벽한 구를 만들 수 없다고 말하죠. 그리고 60도의 3등분이 가능해졌으므로 널리 알려졌으면 합니다. 한국인들은 물론 외국인들도 이사실을 알아야 할테니까요.

    수학논문 제목은 논문<데카르트 좌표계를 적용한 60도의 3등분 작도에 관하여>입니다!!!~~~

    모눈종이에다 x축과 y축을 그리고 원점에서 원을 그리면서 90도를 3등분 작도하고나서 지우개로 지우면서 60도를 3등분 작도해보세요. 컴퍼스로 20도에 해당하는 것을 3번 재면 20도가 3개 즉 60도를 3등분 작도한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2. 크리스천의 이름으로 2017.09.06 17:24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목) 이휘소에 대해서 잘못 알려졌던 사실이 옳은 점이 있었다.(강주상이 옳은 점이 있음,책<이휘소평전>) 박정희 대통령은 핵무기를 완성하고 사퇴하려고 했다.(이휘소 박사님이 만일 살아 계셨다면 1999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을 가능성이 높았음)

    책<로스트 이휘소>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핵무기가 완성되고 나면 1980년이후에 핵무기를 공개하고 나서 사퇴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잘한 것은 빼고 국민에게 잘못했던 내용의 사퇴성명서를 쓰라고 당시 선우련 국회의원에게 1979년 1월에 말했는데 증인이 2명이 더 있었다고 선우련 국회의원이 나중에 알았다고 합니다.

    김재규는 박 대통령이 사퇴할 것이라는 것을 몰랐죠.

    소립자 물리학계 천재 과학자 이휘소(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서(편지)를 이휘소에게 보냈고 1977년에 일본에서 어머니에게 친서를 주면서 잘 보관하라고 말했으나 분실했고 복사본은 이휘소가 갖고 있다고 어머니에게 말했음)

    소립자 물리학계 천재학자 이휘소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휘소는 경기고 2학년 때 대입검정을 거쳐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수석입학. 재학중 미국으로 건너가 1956년 마이애미대학 물리학과를 수석졸업, 1958년 피츠버그대학 석사,

    1960년 펜실베이니아대학 이학박사를 받고, 28세로 이 대학 정교수가 된다. 이후 뉴욕주립대학 교수를 거쳐 시카고대학 이론물리학교수 겸 페르미연구소 이론물리연구부장 등을 맡는다. 그는 특히 1960년대 SU(6) 군이론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1970년대 쿼크와 참이론으로 명성을 높였으며, 게이지장이론을 다루면서 이 분야에 독보적인 기여를 한다. 1972년 발표된 게이지장이론은 그의 가장 훌륭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살람은 이를 거의 완벽한 이론이라고 극찬한다.

    1974년 9월 이휘소는 미 국무부 요청으로 서울대에 AID교육차관 타당성조사차 20년 만에 귀국한다. 이때 박 대통령은 그를 청와대로 초청, 국가안보위협을 상기시키며 그의 귀국을 요청한다. 핵무기개발에 참여하고 싶지 않던 그는 대통령의 제의를 사양하지만, 강대국 사이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조국의 신세에 고민하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의 핵무기개발 집념
    1977년 3월 이휘소는 다시 박 대통령으로부터 그의 귀국을 간청하는 편지를 받는다. 주한미군 1만7천여명이 철수를 시작했다는 급박한 마음이 담겨져 있었다.

    이휘소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일기에 담는다.
    “조국이 공산화되거나 전쟁소용돌이 속에 처할 위험에 놓여 있다고 가정할 때, 내가 조국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핵개발원리를 제공한다면, 나를 낳고 나를 길러준 조국현실을 내가 배반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것이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죽는다! 내가 죽어 조국을 살릴 수 있다.…하늘이여! 무엇이 참다운 삶이고 내가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소서.”

    마침내 이휘소는 친분있는 외과의사를 찾아가 미사일·핵무기 제조원리를 따로 정리·축소해 만든 기밀문서를 내민다. 그의 다리 살 속에 소독된 종이가 넣어졌다. 5월 20일 이휘소는 세미나 참석차 도쿄를 방문, 그날밤 비밀리에 청와대에 도착해 대통령에게 이 문서를 전달한다.
    1977년 6월 16일, 이휘소는 세미나 참석차 가족과 함께 자가용으로 집을 나섰다. 시내를 벗어나자 트럭 몇 대가 그의 차에 따라붙었다. 일리노이주에 가까운 케와네시 근처에 이르렀을 때, 맞은편에서 오던 대형 유조차가 갑자기 중앙선을 넘어 이휘소와 가족이 탄 차를 정면으로 들이받는다. 차 앞머리가 처참히 부서지고 가족 모두 정신을 잃는다. 가족들은 가벼운 부상을 입었으나 이휘소는 사망하고 만다.

    이휘소가 한국에게 미사일 및 핵 제조원리를 넘겨주고 의문의 죽음을 당한 전후, 미국의 원자력정책은 급전환한다. 카터 미국 대통령은 한국정부에 ‘인권탄압중지, 긴급조치 즉각해제, 독자적 핵개발추진 즉시중지’ 등을 압박한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자기들은 이미 다 만들어놓고 남의 나라에 만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패권주의에서나 가능한 발상이다’라고 반발한다. 이런 한미대립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미사일·핵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했다.

    1978년 8월 26일 한 군사기지에서 장거리미사일 발사실험이 완벽하게 성공하였다. 사정거리 150 km, 유효사거리 350 km로 북한 전역은 물론 소련과 중국의 일부까지 미치는 것이었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에서 일곱번째미사일 보유국이 되었다. 이제 한국에서 핵무기개발은 시간문제였다. 미국은 보다 강력한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목숨까지 내놓은 이휘소를 생각하면 박 대통령은 더더욱 멈출 수 없었다.

    박정희정부 핵무기개발 추진 결정적 자료 드러나(주간조선 2010년 1월18일(2089호)에서)
    2010년 1월 오원철 경제수석이 1972년 9월 8일 작성한 보고서중 일부가 국가기록원 정보공개를 통해 일반에 공개되었다. 2급비밀문서로 분류된 이 문서들에는 ‘핵무기의 종류 및 우리 개발방향’ ‘우라늄탄두와 플루토늄탄두에 대한 장단점 비교’ 등 개괄내용과 함께 ‘우리나라 기술수준에 맞춰 플루토늄탄을 개발한다’는 잠정결론이 담겨져 있다. 이 문서들은 박정희정부 당시 핵무기개발이 추진됐다는 결정적 근거자료이다.

    그러나 오원철 전 수석은 당시 연구진들이 작성한 핵무기 기술개발 관련 핵심내용이 담긴 보고서가 현재 국가기록원에도 남아있지 않아 실종상태라고 주장했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청와대의 대통령 개인금고에 보관중이던 핵무기 관련 보안문서 봉투가 외부로 유출됐다는 것이다. 담당자였던 오원철 전 수석은 이 문서를 봉인해 최규하 대통령에게 넘겼고, 이것은 나중에 전두환 신군부에 전달됐다는 것이다......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몇 년전에 개정판을 내고 최근에 2010년판(개정판)을 냈는데 소설(작가의 말이 있음)이 맞죠. 참고로 <1026>이라는 책이 최근에 출판되었죠.
    이휘소 박사는 1978년에 귀국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고 책<우리과학 100년>과 책<이휘소> 상,중,하(2002년)등등에 나왔죠.(이휘소 하권에 이휘소의 어머니와 저자가 대화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편지 얘기) 1977년 6월당시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등에 이휘소 박사의 사망 기사와 조선일보의 1977년 7월5일자에 후속기사(교통사고 경위가 명확하게 조사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최형섭 과학기술처 장관에게 질의했으나 모른다고 답변)가 나왔죠.

    고 최형섭 박사의 회고록에서도 최형섭 박사가 이휘소 박사로부터 우리나라로 귀국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정리할 것(대학교수와 페르미연구소의 이론물리 연구부장을?)이 있어서 아직은 귀국할 때가 아니고 기다려 달라고 말했죠.

  3. 크리스천(4일후 주일) 2017.09.06 17:23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목) 특수상대론과 양자역학등등이 틀렸다고 주장한 책<새로운 원자모델에 의한 자연과학> by 윤한식 박사(크리스천)

    아라미드 섬유(방탄 섬유)를 발명한 윤한식 박사(크리스천)가 자신의 책<새로운 원자모델에 의한 자연과학>(영문판도 있음)
    부제: 상대성 원리나 양자역학이 없이도 물리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도서출판: 청문각(1999년)
    에서 수소의 에너지준위가 E1>E2>E3>......가 되어야 한다고 저와 같은 주장(윤한식 박사는 K>L>M>...전자껍질로 설명했음)을 했죠. 수소의 에너지준위는 E>0으로써 0보다 큰 값을 가집니다. 최외각 전자의 에너지준위가 작으므로 화학반응이 일어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인 후쿠이 겐이치와 로알드 호프만의 프런티어 궤도함수이론을 반대로 수정해야 합니다.

    윤한식 박사는 우리나라 최초로 네이처에 논문을 게재했는데 시기는 1980년대였습니다. 코오롱이 몇 년전에 상품화에 성공했는데 윤 박사는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죠. 미국의 듀퐁사가 큰 관심을 가졌지만 윤 박사는 코오롱을 선택했죠.

    영문판도 있음, 윤한식 박사님의 책<Natural Science Founded on A New Atomic Model>(2004년 출판)

    장장 17년이 걸린 이 교과서는 분자연쇄론이라는 새로운 과학이론을 근거로 하여 쓴 것인데 여기서 분자연쇄력의 근원은 영속전류고리인 원자나 분자의 궤도 전자고리가 발하는 자력이죠. 참으로 참신한 이 논리는 젊은 과학도들에게 일생을 걸고 한 번 탐구해 볼 만한 새로운 과학분야라고 감히 권유하고 싶다고 윤한식 박사(크리스천)는 말했습니다.

  4. 무명의 크리스천의 충성 2017.09.06 17:22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목) 양자역학의 문제점은 전자의 속도가 양자화(불연속적)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옳았다.

    만일 양자역학이 옳다면 전자의 속도(v)는 양자화되어야 하죠. 다시 말해서 전자의 속도가 불연속적인 값을 가진다는 것이죠. 그러나 전자의 속도는 연속적인 값을 가질 수 있죠.

    물질파(드 브로이파)의 파장(람다 λ)은 λ=h/(mv) 여기서 mv는 운동량p임 mv=p

    만일 양자역학이 옳다면 물질파의 파장(λ)은 양자화되어야 하죠.
    그러나 전자의 파장은 연속적인 값과 불연속적인 값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죠. 연속적인 값이 불연속적인 값을 포함하죠.

    연속적인 값 ⊃ 불연속적인 값
    결론적으로 입자의 운동량(p)과 위치(x)를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완전하게 창조하셨는데 양자역학(불확정성 원리)처럼 불완전하게 창조하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논문<확정성 원리의 기초에 관하여>(2000년 5월 중순에 발견), 논문<비양자역학의 기초에 관하여>(2001년 7월 중순에 발견,A4용지 13페이지분량)
    비양자역학(확정성 원리)이 아인슈타인등등이 기대했던 이론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불확정성 원리)이 불완전하다면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죠. 비국소 숨은 변수 이론(non-local hidden variable theory)이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와 플랑크등등이 기대했던 이론입니다. h=mλc에서 빛의 속도(c)가 변하므로 플랑크상수(h)는 플랑크변수(숨겨진 변수)가 됩니다. 드디어 제가 숨겨진 변수를 발견해서 양자역학(불확정성 원리)을 대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5. 크리스천의 이름으로 2017.09.06 17:21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목) 물리적 실재에 대한 양자역학적 기술은 완전하다고 볼 수 있는가?(EPR 역설 논문,아인슈타인과 포돌스키와 로젠이 쓴 양자역학이 불완전하다는 논문)의 결론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불확정성 원리)이 불완전하다면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책<100년만에 다시 찾는 아인슈타인> 임경순 편저,손영란 옮김,사이언스북스(1997년에 출판)
    부록에 아인슈타인의 자서전(통일장 이론의 기초공식이 나옴)과 특수상대론 논문(논문 제목: 움직이는 물체들의 전기역학에 관하여,한글판)과 물리적 실재에 대한 양자역학적 기술은 완전하다고 볼 수 있는가?(EPR 역설 논문,양자역학이 불완전하다는 아인슈타인과 포돌스키와 로젠이 쓴 논문)가 있습니다.

    EPR 역설 논문의 결론
    "...... 앞에서 우리(아인슈타인-포돌스키-로젠)는 (1) 파동함수에 의해 주어진 실재에 대한 양자역학적 설명은 완전치 않거나 아니면 (2) 두 물리량(P와 Q)에 대응하는 연산자들간에 교환법칙이 성립하지 않으면 그 두 물리량은 동시에 실재성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을 증명한 바 있다. 그런 다음 파동함수(Ψ프사이 함수)가 물리적 실재를 완전히 설명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해서, 두 물리량들은 비가환 연산자들과 더불어 동시에 실재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따라서 (1)을 부정하면 유일한 대안인 (2)를 부인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파동함수에 의해 주어진 물리적 실재에 대한 양자역학적 설명은 완전하지 않다고 결론내릴 수밖에 없다.

    실재에 대한 우리의 기준이 충분히 제한적이지 않다는 근거에서 이결론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참으로, 만일 누군가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물리량은 그것들이 동시에 측정되거나 예측될 수 있을 때에만 이 동시에 실재 요소로 간주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면 그는 우리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물리량 P와 Q 둘 중 하나가 예측될 수는 있으나 두 개가 동시에 예측될 수는 없기 때문에, 그것들이 동시에 실재하지는 않는다. 이로 인해 P와 Q의 실재성은 첫번째 계에 대해 수행된 측정 과정에만 의존하는 것이 되고, 그것은 두번째 계를 어떤 방식으로든 교란시키지 않는다. 실재에 대한 타당한 정의라면 이것을 허용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제 파동함수는 물리적 실재에 대한 완전한 설명을 제공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러한 설명이 과연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이론(theory)이 있을 수 있다고 믿는다."

    비국소 숨은 변수 이론(non-local hidden variable theory)이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와 플랑크등등이 기대했던 이론입니다.

  6. 크리스천의 이름으로 2017.09.06 17:19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목) [IF] 양자역학 거두(197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스티븐 와인버그)의 고백… "나도 양자역학 못 믿어"

    2016년 11월27일자의 조선일보 기사에서......(검색어: 와인버그,노벨 물리학상,양자역학)

    [if 카페]
    노벨 물리학상 대석학 와인버그, 돌연 회의론 돌아서… 학계 충격
    "나는 이제 양자역학(量子力學)을 확신할 수 없다."

    지난달(10월) 30일 미국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과학저술평의회 무대에 선 83세 노학자(老學者)의 선언이 과학계에 큰 파장을 낳고 있다. 양자역학은 100년 전 탄생 이후 줄곧 논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 노학자의 입에서 이런 얘기가 나올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가 양자역학 연구의 거두이자 197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스티븐 와인버그(Weinberg) 미국 텍사스대 교수였기 때문이다. 와인버그가 누구인가. 모든 물리학자의 꿈인 '최종 이론(세상 만물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이론)'에 가장 가깝게 다가선 이론으로 평가받는 표준모형의 창시자이다. 세상 모든 것이 17개의 입자로 구성돼 있다고 주장하는 표준모형의 출발점이 바로 양자역학이었다. 양자역학을 의심한다는 고백은 자신의 인생을 의심한다는 고백이나 마찬가지이다.

    100년 전 막스 플랑크, 보어, 아인슈타인 등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들은 뉴턴이 만든 고전물리학의 맹점들을 찾아냈다. 미시세계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 디랙 등이 1920년대 해법을 찾아냈다. 파동함수(波動函數,Ψ 함수,프사이 함수)로 대표되는 양자역학의 수식들을 만들어내 현대물리학을 세운 것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도 모호하고 직관적이지 않은 양자역학을 잘 인정하지 않았다. 고전물리학에서는 야구 배트에 맞은 공의 초기 속도와 방향을 알면 공이 어디에 떨어질지 정확히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공의 위치를 계산하지 않고 확률적으로 떨어질 위치를 추정한다. 어디에 떨어질 확률은 얼마고, 다른 곳에 떨어질 확률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양자역학의 불확실성에 대해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며 비아냥거렸다. 하나의 원자에서 나온 두 광자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동일하게 변한다거나, 하나의 광자를 측정하면 멀리 떨어진 다른 광자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양자역학의 다른 주장도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이런 '수수께끼'는 과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후 물리학자는 두 부류로 나뉘었다. 와인버그는 두 부류를 '도구주의자'와 '실재론자'로 부른다. 도구주의자들은 양자역학이 실험 결과를 계산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여긴다. 이 도구는 실제로 이뤄지는 실험보다 나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실재론자들은 양자역학이 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랜 세월 와인버그는 실재론자였다. 하지만 그는 이날 연설에서 "우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은 매력적이지 않다"면서 "현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움직인다"고 했다. 도구주의자의 입장이다.

    그의 입장 변화는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과학자의 근본적인 의문이라고 볼 수 있다. 양자역학은 아직 '왜 이렇게 되는가'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주지 않았다. 황혼(黃昏)의 노학자는 양자역학의 불확실성을 만들어내는 좀 더 근본적인 이론이 있다고 믿고 싶어진 것이다. 와인버그는 "양자역학이 고전물리학의 틀을 깬 것처럼 과학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완전히 다른 이론이 등장할 수 있다"고 했다.

    와인버그는 양자역학이 진리라고 믿고 있는 과학자들에게 '의심'과 '반증'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최소한 이런 고민은 양자역학을 좀 더 나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게 해줄 수 있다. 양자역학의 가장 큰 문제는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너무 적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영임 기초과학연구원 연구위원]

    논문<확정성 원리의 기초에 관하여>(2000년 5월 중순에 발견)와 논문<비양자역학의 기초에 관하여>(2001년 7월중순에 발견,논문의 페이지수는 A4용지 13페이지분량)>가 양자역학(불확정성 원리)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국소 숨은 변수 이론(non-local hidden variable theory)이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와 플랑크등등이 기대했던 이론입니다. h=mλc에서 빛의 속도(c)가 변하므로 플랑크상수(h)는 플랑크변수(숨겨진 변수)가 됩니다. 드디어 제가 숨겨진 변수를 발견해서 양자역학(불확정성 원리)을 대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발견했던 비양자역학(확정성 원리)이 와인버그가 말한 과학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완전히 다른 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인슈타인이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이 옳았던 거죠.

  7. 무명의 크리스천의 충성 2017.09.06 17:18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목) 현대물리학 침몰하다.(특수상대론,양자역학,불확정성 원리,호킹 복사,초끈이론,빅뱅이론,허블 법칙,급팽창 우주론,우주의 가속팽창,진화설etc)

    세상의 학문(과학,물리학)은 거짓이었습니다. 노래가사(노래 제목: 세상은 요지경, "짜가가 판친다")처럼 가짜가 판을 치고 있었죠.

    타이타닉의 침몰은 비극이었지만 현대물리학의 침몰은 비극은 아니고 과학의 진보(Progress of Science)가 될 것입니다. 타이타닉이 침몰할 때 마르코니의 무선전신으로 SOS(모스 부호)를 해서 어느정도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독일인이 쓴 책(시립도서관의 책,도서관의 책분류 총류000,0번대에 있었음)에서 아인슈타인은 만년에 특수상대론에서의 개념이 하나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서 그것은 신기루였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일반상대론은 틀리지 않았고 수정을 해주면 됩니다. 일반상대론에서 빛의 속도(c)가 변하므로 일반상대론의 장 방정식에서 c^4을 (c^2 + v^2)(c^2 - v^2)=c^4 - v^4으로 수정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인슈타인 자신도 일반상대론에서 빛의 속도가 변한다고 인정을 했습니다. c - v, c(상대속도가 0일 때) , c + v가 일반상대론의 장 방정식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인슈타인이 만년에 특수상대론이 틀렸다고 고백한 이유가 일반상대론에서는 빛의 속도가 변하므로 특수상대론과 일반상대론이 충돌이 일어난다고 생각해서 일 것입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아인슈타인, 나를 용서하십시오. 당신은 당신의 시대(20세기)에서 최고의 지성과 창조력을 지닌 한 인간에게 가능한 유일한 길을 발견했습니다. 당신이 만들어낸 개념들은 심지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물리학에서의 우리의 생각을 이끌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관계들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제는 그것들을 다른 개념들로 대체하고 더 나아가 직접적인 경험의 영역으로부터 제거해야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아인슈타인이 자서전에서 뉴턴에게 한 말을 제가 아인슈타인에게 말한 것입니다.)

    지혜있는 자는 궁창에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다니엘 12장3절)

  8. 다니엘 12장4절(끝 장) 2017.09.06 17:17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목) 양자역학(불확정성 원리) 침몰하다.

    물리학자 가모브의
    책<물리학을 뒤흔든 30년>
    김정흠(물리학자) 옮김, 전파과학사(2004년에 출판)

    책의 끝에 있는 사극 파우스트(표어: 비판하려 드는 것은 아니지만...... by 보어)

    네째 할머니: (다른 할머니에게) 아우들아, 그대들은 언제까지나 복잡한 계산 속에 들지 못하리. 결국은 그 계산의 끝에 가서는 특이성 내 이름이 나타나리라!
    (네째 할머니는 무대 한쪽에 서 있다가 나중에는 들어가 뒤섞인다)

    디랙: 괴상한 새한마리 까악까악 울어대니 무엇을 울어대냐 우리들의 불운인가! 우리의 양자이론 미친듯이 날뛰도다. 그옛날 1926년 다시한번 돌아가세;
    그뒤의 우리연구 (불) 태우는게 알맞도다.

    파우스트: 오늘부턴 아무도 연구조차 할수없나?(이제 우리는 무엇을 연구해야 하는가?)

    디랙: (네째 할머니에게) 아, 그대 특이성아 어서 물러나라!
    네째 할머니: 이자린 내자리요. 떠들지들 마시오.

    디랙: 요녀여 나의 마력 너를 쫓아 버리리라.

    네째 할머니: ......

    디랙: 무엇을 말하는지 알수없는 노릇이다.
    (디랙 퇴장하다 특이성과 부딪친다)

    사회자: (디랙의 뒤를 향하여)

    그대는 알게되리 집념의 그할머니
    달까지 당신따라 끝장보러 따라가리!
    ......

    실제로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물리학자들이 연극을 했다고 합니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다니엘 12장4절(끝 장)

  9. Cernardpn 2015.09.05 08:30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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